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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드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당개 2016. 5. 31. 22:38

알랭드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남자와 여자가 만난다. 둘은 생각한다. 이건 운명이다! 둘만의 세계가 만들어진다. 행복했다가 불행했다가 롤러코스터를 탄다. 어느정도 시간이 흐른 후 그 행복은 신기루였음을, 단지 사랑의 마법이었다는 것을 알게된다. 다시 생각한다. 사랑은 사라질 것이고 행복은 잠시 사랑이 보여주는 환상일 뿐이다. 다시는 그 환상에 속지않겠다. 다짐할 때 쯤 새로운 여자를 만난다. 또다시 사랑에 빠진다.

 책은 남자가 비행기에서 클로이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1인칭 시점의 남자주인공이 클로이를 만나고, 사랑에 빠지는 과정과 심리를 세세하게 분석하고 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아름답게만 묘사하지만 사랑이 언제나 좋고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연애를 할 때는 내가 이런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로 찌질해지기도하고 평소에는 무덤덤하던 사람이 불같이 화를 내기도 한다. 좋아서 만났는데 막상 만나다보니 내 기대에 못미치는 사람인 것 같기도 하고, 어떤 날에는 이렇게 완벽한 사람이 나를 왜 만나지? 느껴지기도 한다. 

 주인공은 사랑에 빠질 때 느끼는 점들을 생생하게 표현한다. 막연한 느낌들이 글로 정리되어 있는데 나는 줄줄 읽어지지는 않았다. 주인공의 자유로운 생각은 철학적 사유로 연결되기도하기 때문. 


P. 103 나의 상상력은 클로이의 치아 사이의 틈에서 노는 것을 즐겼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헝클어져 있었기 때문에 창조적 재배치가 가능했다. 클로이의 얼굴은 그 모호함 때문에, 오리와 토끼가 둘 다 들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비트겐슈타인의 오리-토끼 그림과 비슷했다. 이 그림에서는 보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서 많은 것이 달라진다. 상상력이 오리를 찾으면 그는 오리를 보게 될 것이다. 상상력이 토끼를 찾으면 토끼가 나타날 것이다.  


 생각이 확장되는게 신기한 점은 같은 문장을 다르게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인듯하다. 나를 사랑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바라던 상대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느낄 때, 안도감과 동시에 나를 좋아하는 상대방이 약하게 느껴진다. 왜 나를 좋아하지? 내가 최고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는 말은 결국 그는 나와 같은 수준의 사람이라는게 아닐까? 주인공은 클로이를 약한 사람이라고 느낄 때, 벌 벌을 주고 싶다는 충동을 느껴 갑작스레 화를 낸다. 그리고 본인을 마르크스주의자이기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마르크스는 자신과 같은 사람을 회원으로 받아들여줄 클럽에는 가입할 생각이 없다고 농담을 했다. 이 농담은 클럽 회원권과 마찬가지로 사랑에도 적용되는 진리이다.(p.66같은 상황이 주인공의 시점에서 더 객관적이고 구체적으로 느껴진다. 이부분은 크게 공감해서 오오오 하는 소리가 절로나왔다.ㅠㅠ 객관적으로 보는 그 모습은 너무 찌질하고 변명같이 보였기때문에, 그래도 이게 비정상적인 것은 아니라는 안도감때문에. 이런 사람이 나를 좋아해주다니. 나는 최고야! 라고 생각하면 자존감 지킴이가 될텐데ㅎㅎㅎ

 이 책이 알랭 드 보통의 첫번째 책으로 스물 다섯 쯤에 썼다는 걸 알고 정말 놀랐다. 진부한 연애를 소재로 생각이 이리저리 튀면서 확장되는데 좋은 구절들이 많아서 책이 꼬깃꼬깃해졌다. ㅠㅠ 책이 영화로 나온다면 500일의 썸머일듯ㅋㅋ 찌질하다고 생각하다가도 공감가고 나도모르게 대입했다


P.134

상대의 특징들을 의식하면서 우리에게는 서로의 이름을 다시 지어주고 싶은 요구가 생겼다. 클로이와 나는 부모가 준 이름, 여권과 출생 등록증에 공식적으로 적힌 이름으로 만났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에 대하여 우리만 아는 지식을 더 많이 가지게 되었기 때문에 당연히 다른사람들이 사용하지 않는 이름으로 그것을 표현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클로이는 그녀의 사무실에서는 클로이였지만, 나에게는 그냥 티지였다.

P.173

오늘은 이사람을 위해서 무엇이라도 평생 희생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몇 달 후에는 그 사람을 피하려고 일부러 길 또는 서점을 지나쳐버린다는 것은 무시무시하지 않은가. 나는 클로이에 대한 내 사랑이 그 순간의 나의 자아의 본질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그녀에 대한 내 사랑이 한시적인 것으로서 끝을 맺는다는 것은 다름 아닌 내 일부의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P.174

사랑의 가장 큰 결점 가운데 하나는 그것이 비록 잠시라고 해도 우리에게 심각한 행복을 안겨줄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